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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세대를 위한 성경 여행 가이드(박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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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영호 

책 <일곱 문장으로 읽는 구약> 크리스토퍼 라이트, <일곱 문장으로 읽는 신약> 게리 버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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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문장으로 읽는 구약 + 신약> _일곱 문장으로 읽는 성경



교회는 말씀의 피조물이다. 성경을 새롭게 읽을 때 교회는 새로워진다. 교회가 길을 잃었다고 생각된다면 성경을 다시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상황의 급속한 변화가 주는 압박감 때문인지 텍스트보다는 콘텍스트에 민감해져 있다. 최근 넘쳐 나는 포스트 코로나 담론도 이런 압박감과 무관하지 않다. 필요한 작업이지만 상황 분석 자체가 우리 갈 길을 보여 주지는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텍스트에 대한 적절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성경에 귀 기울이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성경에 대해서는 많이 들었고, 이미 알고 있다는 생각에 있다. 과연 그럴까?

성경이 제시하는 세계는 크고 웅장하다. 내 힘으로 오르기 힘든 거대한 산맥이다. 우리는 그 산의 어느 한 봉우리나 골짜기에 살면서 그 산맥을 다 안다고 생각했을런지 모른다. 크리스토퍼 라이트와 게리 버지가 내어 놓은 <일곱 문장으로 읽는 구약>·<일곱 문장으로 읽는 신약>은 우리를 높은 산의 정상에 올려놓고 큰 산맥을 한눈에 보여 준다. 성경 전체를 간단히 요약 정리해 준다고 약속했던 책들은 많았다. 이 책이 기존 책들과 차별을 두는 점을 세 가지로 꼽을 수 있겠다. 

1) 구약과 신약을 통괄하는 하나의 내러티브를 보여 준다

이 책은 오늘날 우리의 삶과 신앙이 창조 때부터 아브라함의 선택을 거쳐 구약 전체를 지나 예수 그리스도와 초대교회에 이르는 역사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보여 준다. 두 저자의 도움으로 우리는 구약과 신약이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으며, 성경 전체에 흐르는 주제, 역사 전체를 향한 하나님의 선명한 의도가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두 책은 저자의 독창적 주장이나 신학적 색채가 짙은 연구서는 아니다. 주장이 강한 신학 연구서가 개성 짙은 화가의 작품 같다면, 이 책은 거대한 풍광을 그대로 펼쳐 보여 주기 위한 시도다. 저자들은 가이드의 역할에 성공했다. 최근의 복음적이면서도 학문적인 성서학의 논의들을 잘 담고 있기에, 신뢰할 만한 표준의 자격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2) 기독교에 대한 다양한 이해를 일방적으로 배제하거나 축소하지 않는다

"모든 세대가 직면해 온 유혹은, 예수님을 강등시켜 자기 시대의 영웅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지난날 우리는 그분을 현자로, 운동의 지도자로, 정의의 옹호자로, 사랑과 용서로 이루어진 새로운 질서를 지지하는 분으로 만나 왔다."(41쪽) 버지는 위와 같이 말하면서도 이 다양한 예수의 모습들이 나름대로 일면의 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예수에 대한 이해가 일면적이면, 교회에 대한 이해 역시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들에게, 교회는 세상에서 학대당하거나 버림받은 사람들이 희망과 치유를 찾을 수 있는 피난 공동체다. 어떤 사람들에게 교회는 문화적·전통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보호하여 그 구성원들이 세상에 물들지 않게 하는 곳이다. 교회의 유일한 목적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여전히 존재한다."(133쪽) 여기에서 설명하는 교회 역시 각각 나름의 진실을 담고 있지만 전체를 반영하지 못한다. 버지는 "세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프로젝트의 웅장한 파노라마를 이해"할 때, "그리스도인의 삶과 믿음을 이 프로젝트에서 떼어 내 서로 동떨어진 선별적 주제들로 축소시키"는 데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182쪽).

버지의 안내를 따라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이런 단편적 이해들도 전체의 풍경을 구성하는 요소임을 알 수 있으며,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기 위한 보다 통합적인 틀을 갖출 수 있다. 그 틀은 창조 세계를 소중히 여기며 생태계를 보존하는 신학, "이 문제 많은 세상에서 자신감과 회복 탄력성을 갖고 살아(180쪽)"가게 해 줄 삶의 비전도 포괄한다. 버지는 자신의 해석학적 목표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수행하시는 프로젝트의 거대한 파노라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추가적 노력이 필요하지만, 여기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 이로써 우리의 믿음이 더 사려 깊고 풍요롭고 유연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적절한 주제가 우선순위를 차지하고, 예외적 가르침은 점검하고, 핵심적 가르침을 더 부각할 수 있을 것이다."(184쪽)

3) 교회의 위치와 나가야 할 길을 보여 준다

복음이 단순히 이 세상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가는 자격을 보장받는 방법이나 '죄 관리 프로그램'이 아니라, 이 세상 전체를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어젠다(agenda)를 알고 그 프로젝트에 동참하라는 권유임을 이해할 때, 우리는 우리가 서 있는 자리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게 된다. 하나님의 어젠다를 이해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교회를 볼 수 있는 시각을 갖는다는 것을 말한다. 교회를 하나님의 시각에서 보면 선교적(missional) 관점이 열린다. 선교적 교회란 교회가 자신의 어젠다를 성취하는 기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어젠다를 수행하기 위해 세상에 보냄 받는 공동체라는 고백이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선교'라는 주제가 드러나는 구절을 뽑아서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선교를 이해할 수 없다. 창조로부터 이어지는 하나님의 어젠다를 이해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선교적 시각을 갖출 수 있다. 이 책은 선교적 교회를 꿈꾸는 공동체의 기초 자료가 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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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러티브로 제자 훈련 돕는 탁월한 교과서
 
버지가 성서학 교수이면서 시카고 교외의 한 교회에서 주 중 예배(midweek service)에서 오랫동안 성경을 가르쳤다는 점은 이 책의 학문적이면서도 목회적인 특징을 설명해 준다. 그의 강의는 해당 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동영상을 통해 우리는 그가 얼마나 열정적인 설교자이며 의사소통에 탁월한 사람인지 알 수 있다. 그는 이 책이 담고 있는 내러티브가 20~30대 젊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특히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는 경험을 나누고 있다.

한국 교회 목회 현장에서도 이 책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교회는 당장 다가오는 주일부터 7주간 <일곱 문장으로 읽는 구약>으로 설교하고, 이 주제를 따라 소그룹 모임을 할 계획을 세웠다. 하나님나라 내러티브로 교회 양육 과정을 구축해 가려고 노력하던 중 만난 이 책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지역 교회나 선교 단체 등에서 이 책들을 진지하게 읽는다면 단순히 성경 내용을 배우는 것뿐 아니라, 세계를 보는 시각과 공동체의 방향성에 근본적 도전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설교를 위해 본서를 꼼꼼히 읽으면서 (특히 구약의 경우) 한 주제에 한 달 정도 배정하여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것도 유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밑그림으로 하여 인식과 실천의 지평을 확대해 가는 다양한 시도가 가능할 것 같다. 이 경우 참고할 서적들이 필요할 것이다.

리처드 미들턴의 <새 하늘과 새 땅>(새물결플러스)은 세부적 성경 해석에 큰 도움이 된다. 주석적으로 과하다 싶은 부분들도 여럿 있지만, 주제 의식을 선명하게 살리는 도전적 접근이 매력인 책이다. 크레이그 바르톨로뮤와 마이클 고힌이 쓴 <성경은 드라마다>(IVP)는 라이트와 버지의 책과 긴밀하게 조응한다. 크리스토퍼 라이트의 <하나님의 선교>(IVP)와 톰 라이트의 <혁명이 시작된 날>(비아토르)은 시야를 넓히고 학문적 근거를 든든히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성서 내러티브를 교회의 신앙 훈련과 연결시키는 실제적 전략과 해석학적 기초는 밴후저의 <들음과 행함>(복있는사람)에서 찾을 수 있다. 1년 정도 기간을 정해서 위의 책들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모임을 한다면, 성경을 보는 시각이 열릴 뿐 아니라 기존의 제자 훈련을 대체할 수 있는 하나님나라 중심의 양육 체계에 대한 감도 생길 것이다.

추천사를 위해 원고를 미리 읽으면서 번역에 의문이 드는 점에 대해 번역자와 이메일로 대화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번역자가 성경 원전과 다양한 영어 역본 등, 많은 자료를 세밀히 검토하면서 노력했음을 알게 되었다. 신학적 맥락을 충분히 이해하고 작업했을 뿐 아니라 영어로 쓰인 글과 한국 독자들 사이의 문화적 간극을 훌륭히 메우는 번역을 해낸 점을 치하하고 싶다. 깔끔한 편집과 디자인도 책의 매력을 더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밝힌 소망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동참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저 멀리 아브라함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자신의 유산을 명확히 이해할 때, 또한 자신이 특권적으로 받은 신적 생명이 단지 자기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깨달을 때, 교회는 비로소 교회가 된다. (아브라함의 소명과 마찬가지로) 교회의 소명은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는' 것, 세상에 빛과 생명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134쪽)


박영호 
성서를 제대로 읽는 모든 곳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다고 믿는 성서학자. 부산대학교 영문과, 장로회신학대학교 신대원과 대학원을 마치고, 미국 예일대학교에서 석사, 시카고대학교 인문학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5년에 귀국해서 한일장신대학교 신약학 교수, 경건실천처장으로 일했고, <한국기독교신학논총> 편집주간을 지냈다. 포항제일교회 담임목사, 미래목회와말씀연구원 원장으로 한국교회를 섬기고 있다. 지은 책으로 <빌립보서>(홍성사), <에클레시아>(새물결플러스), <성경을 보는 눈>(공저, 성서유니온) 등이 있다.


*이 서평은 뉴스앤조이(2020년 5월 22일)에 실린 글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IVP 2020-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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