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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의 문을 두드리는 이들을 위한 작은 책, 큰 울림, 긴 여운(박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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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영돈

책 『신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헬무트 틸리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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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을 전공한 나는 자연히 저명한 조직신학자 헬무트 틸리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에게서 내가 찾던 모범을 발견하였다. 특별히 그의 신학 사상에 매료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신학 저서는 왠지 내 입장과 취향에 맞지 않아 애독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내가 그에게 강한 끌림과 도전을 받은 이유는 그가 난해한 철학과 신학을 섭렵한 교의학자인 동시에 탁월한 설교자였다는 사실이다. 나는 교리를 생명력 없이 밋밋하고 무미건조하게 읊조리는 통상적인 조직신학자의 이미지가 무척이나 싫었다. 조직신학이 사람들에게 생명과 열정을 불어넣는 불타는 논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런 이상을 추구했다. 그런데 내가 바라던 바를 실제 이룬 사람을 만난 것이다. 결코 극복할 수 없이 무한 간극처럼 벌어져 있던 딱딱한 조직신학과 감동적인 설교의 두 영역을 멋지게 통합한 신비로움을 틸리케에게서 발견하고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과 희열을 느꼈다.

 

지금까지 울림을 주는 따스한 권면


틸리케가 젊은 신학생이었던 나에게 큰 도전이 되었듯이, 갓 신학 공부를 시작하는 이들을 위해 그가 쓴 이 소책자가 그들의 일생에 소중한 가이드가 되리라고 믿는다. 노신학자의 따스하면서도 예리한 권면은 신학에 입문하는 이들뿐 아니라 목회자와 신학자들까지 신학에 임하는 마음 자세를 가다듬게 하는 큰 울림과 긴 여운이 있다. 나는 신학 공부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이 책을 읽었는데 은퇴를 하는 시점에서 다시 읽어 보니 그 내용이 무척 새롭게 다가왔다. 이 책의 메시지를 내내 곱씹으며 신학 공부를 했더라면 얼마나 유익했을까 하는 아쉬움을 느낀다.

 

신학 공부의 영광과 위험


책에서 틸리케는 신학의 아름다움과 영광과 함께 그 위험과 질병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분석해 준다. 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가장 영광스러운 일인 동시에 가장 위험한 작업이다. 신학으로 인해 아름답고 존귀한 사람이 될 수 있는 반면에 가장 추하고 몹쓸 인간이 될 수도 있다. 틸리케는 무한히 아름다우신 분을 논하는 신학이 아름다운 학문이 되지 못하고 거짓되고 추악한 신학이 될 수 있는 위험이 어디에 도사리고 있는지를 전문가적 통찰로 예리하게 짚어 준다. 틸리케는 그가 일컫는 신학적 변성기에 겪는 문제점을 지적한다. 신학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교회 역사의 장구한 세월 동안 빛나는 별과 같은 신앙의 선진과 스승들이 정교하게 발전시키고 구축한 신학 체계를 접하며 탄복하고 열광한다. 탁월한 예술의 경지에 이른 것 같은 신학의 매혹적 자태가 뿜어내는 마력에 흠뻑 빨려 들어간다. 그래서 신학 연구에 탐닉한다. 그 신학적 자산을 모조리 삼켜 버릴 듯이 엄청난 지적 욕구와 열정으로 신학 지식을 폭풍 흡입한다. 그리고 그 신학의 체계를 논리적으로 잘 파악하고 개념적으로 잘 설명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다. 그러나 그 신학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선진들이 겪었던 치열한 영적 투쟁과 갈, 그 속에서 빚어진 생생한 신앙 고백과 영적 체험에는 문외한일 수 있다.

 

죽임의 신학, 살림의 신학


그러므로 진정한 신학은 그 탐구의 대상인 하나님과 성령 안에서 깊이 연락하고 교제하는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의 호흡으로 얼룩진 순례의 여정이다. “신학 사상이라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과 나누는 대화라는 공기 속에서만 숨을 쉴 수 있다.” 신학 공부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에서 배양되는 활기찬 영적 삶에서 끊임없이 온기를 공급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학은 그것을 입은 우리를 짓누르고 얼어붙게 만들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얼음 갑옷이 될 수 있습니다.” 성령이 운행하는 교회 공동체의 기도와 말씀 선포의 기반암 위에 세워진 신학, 거룩한 진리의 산맥 정상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거기서 맑은 공기, 즉 하나님의 생기를 호흡함으로 빚어지는 신학만이 교회와 세상에 생명을 불어넣는 산 지식이 될 것이다. 틸리케와 함께 신학의 여정을 떠나는 모든 이에게 이런 은총이 있기를 빈다.



박영돈 

교회의 선생으로서 오랫동안 고려신학대학원에서 교의학을 가르쳤다.

얼마전 교수직에서 물러났지만 후학들을 가르치는 일과 교회에서 설교자로 봉사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본 글은 신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해설에 실린 글을 편집한 것입니다

IVP 2019-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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