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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이 된 사람을 만나다(지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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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근

책 『교회의 소명』마이클 고힌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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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리 뉴비긴의 선교적 교회론




선물과도 같은 만남


레슬리 뉴비긴은 여러모로 교회에 주어진 선물이었다”(377). N. T. 라이트의 말이다. 그간 레슬리 뉴비긴을 여러 책으로 만나 왔지만, 마이클 고힌은 이 책을 통해 레슬리 뉴비긴의 사상을 집약하면서도 상세하게 서술해 주었다. 무엇보다 레슬리 뉴비긴은 교회에 주어진 선물일뿐 아니라, 지난 20여 년간 미션얼 운동을 해 온 나에게도 큰 선물이었다.

 


지금 레슬리 뉴비긴을 소환해야 할 이유


선교적 교회, 미셔널 처치, 미션얼 교회 등 어떻게 번역하든 소수의 운동가와 학자들이 시작한 ‘missional church’에 대한 국내의 논의는 10여 년의 발효 기간을 거쳐 몇 년 전부터는 일종의 유행처럼 가져다 쓰지 않는 곳이 없을 만큼 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이 되어 버렸다. 이런 맥락 가운데 최근 관심의 방향이 공공신학’(public theology)으로 선회하고 있는 시점에, 선교적 교회론(missionary ecclesiology)을 통해 이 담론들의 출발점 혹은 기초를 놓았다고 인정되는 레슬리 뉴비긴을 소환하는 것은 그 의미가 매우 깊다.

 

이 책에서 저자 마이클 고힌은 뉴비긴 사상의 4가지 원동력으로 첫째, (공적인) 복음, 둘째, 보편역사를 관통하는 성서 이야기, 셋째, 교회를 포함한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들의 선교적 소명, 넷째, 문화와 선교적 만남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레슬리 뉴비긴의 사상을 한마디로 “‘복음 원동력’, 즉 복음, 성경 이야기, 선교적 교회, 문화와의 선교적 만남”(39)이라고 종합하는데, 우리는 이를 통하여 다시금 기본으로 돌아가 신학적 성찰을 깊이 해 보아야 한다. 이러한 핵심 동력의 체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는 담론과 프로그램의 차용이야말로 운동의 피상성의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 시기가 교회에 주는 충격이 만만치 않은 이때가 이런 복음과 교회와 문화에 대한 깊은 성찰이 더욱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싶다.

 


마이클 고힌의 매력적인 레슬리 뉴비긴 이해

복음과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개인적 신앙으로서의 복음을 강조해야지, 공적 신앙을 위해 하나님 나라를 강조하면 위험하다는 시각이 있다. 나도 몇 해 전 어느 수련회에서 그런 이야기를 직접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마이클 고힌은 이 책에서, 왜 복음이 성경 전체 이야기가 가리키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어야 하는지를 뉴비긴을 통해 시원하게 밝혀 준다.



교회가 복음과 성경 이야기를 공적 진리모든 민족, 모든 백성, 모든 문화의 삶을 위한 진리로 이해할 때만, 선교적 만남을 위해 준비될 것이다”(68).

하나님 나라의 구원이 창조 세계만큼이나 폭넓기 때문에, 그리고 교회가 다시 새롭게 된 인류이기 때문에, 교회는 어떤 사적 영역으로 쫓겨날 수 없다. 교회는 공적 단체로서, 하나님 나라의 포괄적이며 회복적인 구원을 드러내야 한다”(130).



또한 저자가 레슬리 뉴비긴의 저작을 통해, 모이는 교회만이 아니라 흩어지는 교회 역시 중요하며 그런 점에서 소위 평신도들의 일상생활이 중요하다는 지점을 계속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은, 일상생활사역연구소를 통해 동일한 내용을 강조해 온 필자에게는 매우 고무적인 대목이었다. 

 

새로운 존재로서의 교회도 새로운 사회 체제로서의 교회도, 모인 공동체로서의 교회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뉴비긴의 해석자들 일부가 저지른 실수다. 내가 언급한 두 곳 모두에서, 이 새로운 존재 혹은 새로운 사회 체제는 공동체로 모인 교회의 삶에서만 아니라, 자신들의 다양한 부르심 가운데 흩어진 교회의 삶에서도 나타난다”(163).

 그러므로 교회가 주중에 흩어져 있을 때, 그것은 교회보다 조금도 못하지 않다. 평신도들이 문화 속에 흩어진 파편들이어서 예배와 교제를 위해 다시 모일 때 비로소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새로운 인류, 혹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흩어진 형태에서나 모인 형태에서나 마찬가지다”(216).

 


그 외에도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책에는 초교파주의로 번역되어 있다)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관점을 제공하는 대목이나, 현대 세계와의 선교적 만남을 위해 경제적 현대성과 소비 지상주의가 오늘날 교회를 위협하는 중심 우상숭배라는 통찰은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가슴에 깊숙이 남아 있는 대목이다.

 


오늘을 위한 레슬리 뉴비긴의 유산


이것은 이 책 마지막 장의 제목이다. 레슬리 뉴비긴의 유산, 그 영향력을 마이클 고힌이 이 책의 기획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을 통해 가늠할 수 있다.

 

이 책은 계획된 두 권 가운데 첫 번째 책이다. 이 첫 번째 책에서 나는 뉴비긴의 선교적 교회론을 그의 사상의 핵심 원동력의 맥락 안에서 상대적으로 간결하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개괄한다. 두 번째 책에서는 팀 셰리든과 내가 뉴비긴의 교회론 계승자들선교적 교회, 이머징/이머전트 교회, 딥 처치, 센터 처치을 뉴비긴의 선교적 교회론에 비추어 기술할 것이다”(20).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최근 계승자들의 목록을 보면 뉴비긴의 유산, 그 영향력을 대략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이클 고힌은 뉴비긴의 작업에 비추어 다른 교회 운동들을 평가하려는목표를 갖고 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우선 뉴비긴의 선교적 교회를 제대로 개괄하는 것이 이 책의 의도라고 밝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위에 언급된 운동들과 그 추후 흐름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더욱 이 책에 관심이 생길 것이다.

 

이 논의의 초심자나 대중 독자들의 경우, 책의 머리말과 서론을 읽고 나서 그다음에 바로 마지막 7장을 읽고, 이후에 더 깊은 공부를 위해 1장부터 읽어 나가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겠다. 마이클 고힌은 복음 원동력을 설명하기 위해 본문에서 상당히 많은 레슬리 뉴비긴의 주장을 인용하고 있는데, 큰 그림을 알지 못한 채로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으면 뉴비긴의 인용과 저자의 설명이 겹쳐지는 부분에서 자칫 혼란스러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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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긴과의 더 깊은 만남을 소망하다


몇 달 전 걷기 운동을 하면서 한동안 마이클 고힌의 유튜브 강의들을 듣곤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다시 그 강의 영상들을 찾아 듣기 시작했다. 특히 그가 레슬리 뉴비긴의 유산을 다루는 부분들을 들으면서,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관점에서 미션얼 트레이닝 센터와 서지 네트워크라는 구체적인 응답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책을 다 읽어 갈 무렵에는 레슬리 뉴비긴의 육성이 담긴 녹음 파일도 찾아 듣기 시작했다(이 책 21면에 사이트 안내가 나와 있다). 고힌을 통해, 뉴비긴과 더 깊은 만남을 갖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책은 만남이다. 만남은 선물이다.






지성근

목사, 일상생활사역연구소, 미션얼닷케이알 대표 




IVP 2021-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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