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다는 것'에 대한 물음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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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모르는 시대에 철학과 신학, 문학과 과학을 종횡무진 넘나들며 기독교적 혜안으로 성경적 진리와 삶을 설파하는 강영안 교수는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기독 지성입니다. 그의 신간 <읽는다는 것> 출간에 즈음하여 미국 칼빈 신학교 철학신학 교수로 재직 중인 그와 서면으로 진행한 인터뷰를 두 회에 걸쳐 소개합니다.
* 첫 번째 인터뷰와 이어집니다.
A. 무엇보다도 성경을 음식처럼 제대로 씹어 먹는 일입니다. 살이 되고 피가 되게 말이지요. 성경 통독도 중요하고 성경을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읽는가가 역시 중요합니다. 주유소에서 기름 넣듯이 읽는다고 될 일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조금씩 몇 구절을 읽더라도 그걸 가지고 씹고 또 씹고 다시 씹어서 나의 삶이 되게 해야지요.
예컨대 마태복음 6장 9절부터 13절까지 주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기도를 읽는다고 합시다. 아니면 이 본문을 가지고 기도한다고 합시다. 그러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 한 구절을 가지고 며칠을 씹으며 음미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우리가 말을 건네고 그 아버지께서 아들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 지금, 여기에, 내가 서 있는 삶의 자리에 현존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분의 이름과 그분의 통치와 그분이 우리 삶에서 이루시고자 하는 뜻을 묵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저 멀리, 우리의 삶과 세계를 초월해 계신 분이면서도–아우구스티누스가 얘기하듯이–우리 자신보다도 훨씬 우리 자신에게 가깝게 계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단순히 객관적으로, 또는 단순히 주관적으로 읽을 수 없습니다. 말씀을 통하여 나의 삶을 보고 나의 삶을 말씀으로 가져가야 말씀을 제대로 읽을 수 있습니다. 말씀을 ‘인격적으로’ 읽어야 말씀이 살아 있는 말씀으로 우리의 삶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지요.
Q. 이 책에서는 다른 책들 소개도 아주 많이 하셨습니다. 교수님은 평소 주로 어느 시간에 책을 읽으시나요? 철학과 신학 분야 외에 어떤 분야의 책을 즐겨 읽으시는지요?
A. 따로 시간을 정해놓고 읽지는 않습니다. 시간과 장소에 관계 없이 틈이 날 때마다 읽는 편입니다. 이제는 좀 덜 읽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네요. 읽지 못한 책이 너무 많이 쌓여 있습니다. 아직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거지요. 책 읽기에 초연한 분들도 있는데, 그분들을 보면 참 부럽습니다.
마지막 장(10장)에서 썼듯이 책 읽기는 우리에게 창문을 통해 세상을 내다보거나 출입문을 박차고 뛰쳐나가 세상을 가슴으로 한껏 만나보는 경험과도 같아요.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자기 속에 갇혀 사는 사람과 같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철학을 주로 가르칠 때 저에게 쉼을 주던 책들은 성경에 관한 책이나 신학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신학교 교수로서 가르치게 되니, 신학 책을 읽는 일도 이제는 업(業)이 되어 버렸습니다. 저에게는 내러티브에 대한 갈증이 있음을 느낍니다. 이야기를 읽고 싶은 마음이지요.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소설을 찾아 읽습니다. 미국에 온 이후 제가 만난 소설가로는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이스라엘 작가 아모스 오즈(Amos Oz)가 있고요, 아주 최근에는 까뮈의 <페스트>를 다시 읽었습니다. 또 파울로 코엘료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를 읽기 시작했는데 아직 끝을 내지는 못했습니다.
Q. 책에서 소개한 것 외에 교수님만의 특별한 독서 습관이나, 독서 방법이 있으신가요?
A. 특별한 방법은 없습니다. 옛날에는 카드를 만들면서 읽었는데 카드를 쓰지 않은 지 오래 되었습니다. 어떤 책은 메모를 많이 하면서 읽지만 어떤 책은 아예 표시도 하지 않고 읽기도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책도 있고, 몇 군데 가려서 읽는 책도 있습니다.
정보를 위한 책인지, 즐거움을 위한 책인지, 논문을 쓰기 위해 읽는 책인지, 나를 빚어내기 위한 책인지 잘 가려내어 적합한 방식으로 읽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할 수만 있으면 손에 펜을 들고 표시도 하고 메모하면서 읽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이 책은 어떤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쓰셨다고 보면 될까요?
A. 누구나 읽으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성경 읽기와 묵상에 관해서 많이 다루었으니 성경을 일상의 삶 속에서 날마다 읽기를 원하는 분이면 누구나 독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신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거나 성경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분들을 겨냥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책 속에 쓴 내용은 신학 교수들이 신학교에서 강의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저의 관점은 하나님 나라를 지금, 여기의 일상에서부터 영원에 이르기까지 살아가기를 원하는 하나님 나라 백성들, 곧 성도들에게 맞추어져 있습니다.
신학 교수나 성경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분들, 일선에서 목회를 하시는 목사님들께도 무익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삼위 한 분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 안에서 살고자 하는 한 철학자가 성경 말씀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여러 전통을 통하여 고민한 흔적을 살펴볼 기회가 되리라 믿습니다. 이 책을 통하여 목사님들도 자신이 하고 있는 성경 읽기와 묵상, 그리고 설교를 한번 돌아보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Q.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주의를 기울여 읽으시라는 말밖에 없습니다. 남이 대신해서 읽은 책을 요약해 줄 수 있고 읽은 내용을 전해 줄 수는 있지만, 어느 누구도 나를 대신하여 읽어 줄 수는 없습니다. 내 손으로 밥을 먹어야 하듯이 내 눈으로, 내 마음을 쏟아 읽어야 삶에 유익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읽으십시오!” 이것이 제가 드릴 말씀입니다.
Q. <읽는다는 것> 이후에도 IVP와 출간을 약속하신 원고가 서넛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책들은 언제 만나 볼 수 있을까요?
“데오 볼렌떼!”(Deo volente,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계속 이어서 쓸 수 있겠지요. 그렇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국내의 바쁜 삶을 피해 미국에 와서 마치 수도원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까닭은 공부하는 시간과 글 쓰는 시간을 좀 더 얻고자 함입니다. 여러분들의 기도와 성원을 바랍니다. 기도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