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소망을 주는 '죄'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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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만에 <죽음에 이르는 7가지 죄>의 확대개정판을 집필한 천안 고려신학대학원 원장 신원하 교수님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개정판 출간의 감회와 '7대죄'를 강조하는 이유, 확대개정판에 추가된 '허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또한 말미에 코로나시대 한국 교회에 대한 진단과 전망에 대해서도 언급 됐습니다. 서면으로 진행한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Q. 안녕하세요, 교수님.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A. 지난여름은 정말 숨 가쁘게 보냈습니다. 학교 일을 핑계로 미루어 왔던 7대죄 책 개정 작업을, 마치 마감 시간에 맞추어 리포트 제출하듯이 한 듯합니다. 끝내 놓고 뒤돌아보니 힘들었지만 뿌듯하고 또 기뻤습니다.
Q. 올해는 코로나19로 각 학교에서 제대로 수업을 하기 어려웠습니다. 교수님께서는 1학기 신학대학원 학사 일정을 어떻게 소화하셨고, 방학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A. 고려신학대학원은 전교생이 3년 동안 기숙사 생활을 하는 곳인데 1학기 전반부에는 학생들의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비대면 수업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5월 초순, 코로나 확진자가 현저히 줄기 시작한 시점부터 6주간은 학생들이 학년별로 2주간씩 등교하여 새벽기도, 채플, 그리고 모든 수업을 정상적으로 진행했습니다. 물론 기숙사는 1인 1실로 배정했습니다. 6주 동안이지만 신대원생들과 함께 생활하며 신학 수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참 감사하고 기억에 남습니다. 방학 동안은 말씀드렸듯이 거의 『죽음에 이르는 7가지 죄』 확대개정판을 내는 데 올인(all-in)하다시피 했습니다.
Q.『죽음에 이르는 7가지 죄』가 2012년에 처음 출간된 후 8년 만에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감회가 어떠신지요?
A. 정말 감사하고 기쁩니다. 처음 책을 출간하고 1년 정도 지나서, 신현기 대표가 나중에 확대개정판을 내자고 제안했더랬습니다. 책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과 질문들을 새로 담아 적절한 시기에 다시 내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제안한 방식은 아니지만, 8년이 지나 이렇게 확대개정판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예상보다 늦어진 것은, 제가 약 4년 전에 고려신학대학원 원장이 되면서 연구하고 글 쓰는 일을 거의 할 수 없게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기간 동안 늘 마음에는 책 개정에 대한 부담이 있었습니다. 늦었지만 이렇게 확대개정판을 낼 수 있어서 감사하는 마음이 큽니다. 정지영 기획주간과 임정은 간사의 독려와 제 박사조교 이춘성 목사의 성원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지 모릅니다. 세 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Q. ‘죽음에 이르는 7가지 죄’ 또는 ‘7대죄’라는 개념이 한국 교회에서는 아직도 낯선 듯합니다. 종교개혁 이전 중세 교회, 또는 가톨릭교회의 유산일 뿐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고요. 무엇보다 요즘 교회에서 ‘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전하는 것이 예전 같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교수님이 7대죄를 강조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A. 세속화 영향을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세속화 현상을 가리켜 종교와 초월적 진리를 사회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밀어내고 그 자리에 개인의 이익, 사고, 판단으로 채우는 현상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신학자 데이비드 웰스(David F. Wells)는 20세기 후반기 미국 사회와 문화는 세속화와 개인주의에 크게 영향을 받으면서 교회들도 점점 죄와 회개, 십자가를 설교하기보다는 자기 성취, 자기고양, 상처받은 자아 치유, 물질적 번영에 관해 설교하는 경향이 점점 득세해 왔다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 죄에 대한 설교는 거북한 일로 여겨지게 되었지요.
우리나라도 비슷한 경향을 보여 왔습니다. 근래에는 대형교회에서 죄를 지적하고 경계하는 설교를 듣기가 쉽지 않습니다. 성도들이 그런 설교를 별로 듣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죄에 대한 설교를 들을 수 있든 없든 사람들은 누구나 죄에 대해 의식하고 있고 자신의 죄악된 행동을 다소 불편해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도들이 죄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실제로 죄로 말미암아 피폐해진 자신의 모습을 보고 깨닫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7대죄 주제는 개신교에서 낯선 주제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현재는 좀 달라졌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신학생들이 학창 시절에 이 주제에 대해 거의 배운 적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1990년대 전후에 한국 목회자들 가운데서 영성과 영성 훈련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일어나기 시작한 이후 한국 교회에 이 주제가 소개되었고, 자연히 조금씩 알려져 관심을 갖는 이들이 생겨난 것이지요.
7대죄에 대한 가르침은 한 사람 안에서 그리고 공동체에서 죄가 작용하는 구체적인 현상과 모습을 잘 보여 줍니다. 이 교리를 통해, 성도들이 성령의 도움 없이는 자신이 이런 악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고 이러한 악의 길에서 벗어나고자 죄와 씨름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Q. 이번 개정판에서는 7대죄에 ‘허영’이 추가되었습니다. 우리가 허영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A. 허영은 20세기를 넘어오면서 7대죄 목록에서 슬그머니 빠져 버렸지만 지난 1,500여 년 동안 7대죄의 하나로 전해져 내려왔습니다. 다른 7대죄들보다 그 해악성이 결코 덜하지 않은 것이지요. 대부분 사람들은 다른 이들 앞에 드러나고 박수갈채 받는 것을 좋아하고, 주목받고 인정받는 직함으로 불리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뛰어남과 성취를 드러내고자 합니다. 노골적이냐 은밀하냐의 차이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타인의 주목과 칭찬에 민감하면 민감할수록 외식하기가 쉬워집니다. 이런 사람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부터 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지금 여기서 사람들로부터 상을 이미 받아 버렸기 때문이지요. 사람의 칭찬과 인정에 연연하게 되면 주님의 칭찬과 인정에 대한 의식은 약해지게 마련입니다. 이 땅에서 받는 칭찬과 영광은 뭔가 공허감이 있기 마련이라, 계속 받아 채우려고 안달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채운다 해도 그 만족감은 그리 오래 지속하지 못합니다. 이내 사라지는 광채일 뿐이지요. 그럼에도 그 유혹은 강력합니다. 특히 21세기 한국 사회는 허영을 부추길 뿐 아니라 소비자의 허영을 동력으로 삼는 문화산업이 많습니다. 허영의 실체를 파악하고 경계하지 않으면 그 치명적 죄악에 굴복하여 자기를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한국 교회에서 허영에 대한 분석과 대책 마련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Q. 교수님은 죽음에 이르는 치명적인 ‘죄’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오히려 소망을 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A. 성전에 기도하러 가던 바리새인과 세리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잇습니다. 자기 의에 대한 자신감이 있던 바리새인이 아니라, 자신의 더러움을 깊이 인식하고 죄인인 자신을 불쌍히 여겨 주시기를 간구한 세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받았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고 더러운지를 깨닫는 만큼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바랄 수밖에 없지요. 그것 외에는 소망이 없음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자신 안에 깊이 박혀 있는 죄악이 크다는 것을 인식하면 그만큼 더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는 자리에 가까이 이를 수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자신 안에 있는 치명적 죄들의 깊은 뿌리를 발견하게 된다면, 자신의 역부족 상태를 발견하고 절망하는 만큼, 하나님께 나아가 그분의 은혜와 도움을 받아들이기를 바랍니다.
Q. 2012년 초판이 나온 이후 지금까지, 한국 교회는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8년 전 한국 교회와 지금의 한국 교회는 어떻게 달라졌다고 보시나요? 또 코로나 이후 앞으로 한국 교회는 어떻게 달라질까요?
A. 지난 10년 동안 교회는 내적으로 어린이와 청년층이 현저히 줄어들어 장년층과 노년층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청년들은 취업난과 세속화라는 시대 분위기 가운데서 신앙과 헌신이 약화되고 교회의 활력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는 이 현상을 가속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교회는 모이기를 폐하는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일에 힘쓰고 모이는 공동체가 되도록 지혜와 전략을 짜야 합니다. 목회자와 중직자들은 교회가 성도들이 자원하여 나오고 싶어 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깊은 고민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이 기간에 그런 작업을 잘 감당하지 못하면 교회는 심각할 정도의 감소세를 경험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Q. 교수님은 기독교 윤리학을 전공하셨고 지금까지 후학들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기독교 윤리학자의 관점에서, 특히 요즘 한국 교회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여론의 뭇매를 맞는 현실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시는지요? 지금의 코로나19 시대를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A. 한국 교회가 불교나 천주교에 비해 사회봉사와 복지에 훨씬 많은 기여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사회적 신뢰도는 낮습니다. 시민들이 교회의 구제 금액과 정도를 통해 교회를 평가하지만은 않는 것이지요. 시민들이 교회와 그리스도인(Christians)들로부터 그리스도인(people of Christ)다운 독특한 인상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너희는 그리스도의 향기’(고후 2:15)이고 ‘그리스도의 편지’(고후 3:3)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고 있는지, 하늘 메시지를 몸으로 전달하는 편지가 되고 있는지 자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솔직히 우리의 모습이 ‘신앙 따로, 삶 따로’가 아닌지, 사회 정의와 사랑 실천보다는 교세 확장, 이 땅의 소유와 풍성에 더 연연하는 모습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는 특히 이번 코로나19의 고난의 기간에 교회가 이 땅에 거주하는 하늘나라 시민 공동체라는 정체감을 분명히 하고 그에 걸맞은 모습으로 스스로 변신해 가는 계기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스탠리 하우어워스의 표현대로 하면, 우리를 독특한 삶의 방식을 보여 주는 ‘거주하는 이방인’의 공동체 즉 하늘 시민의 모임으로 만들어 가야하리라 생각합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그 방향으로 차근차근 나아가야 합니다.
Q. 오랜만에 IVP 독자들과 조우하게 되셨는데요,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이 책이 새로운 시대의 독자들을 만나도록 확대개정판 출간을 결정한 IVP 간사님들의 의도와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 책이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자신의 죄악됨을 깨닫게 하고 나아가 죄의 욕망에 대항하여 그리스도가 주시는 새 덕목으로 옷 입어 나가는 삶을 사는 데 실제적 도움을 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 책이 그렇게 쓰이기를 진정으로 바랍니다. 독자들은 이 책을 반드시 처음부터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이 가장 취약한 죄를 다룬 장부터 한 장 한 장 읽어 가시면 이 책을 완독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준비하고 계신 다음 책이 있으시다면, 살짝 예고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A. IVP와 출간을 약속한 “그리스도인들이 직면하는 윤리 문제들”(가제)이라는 원고가 있습니다만, 여러 사정으로 아직 원고를 완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 책 내용의 90% 정도를 이미 4년 전에 써 두었고, IVP에서 3년 전부터 근간으로 예고해 주셨는데, 아직 마무리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만약 다음 책이 나온다면, 아무래도 이 책이 되지 않을까요? 이번 확대개정판이 드디어 출간된 것처럼 IVP 간사님들이 독려해 주시면,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저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Q.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맡으신 일이 많으신데, 모쪼록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A. 감사합니다. 곧 직접 만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