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014년 3월-4월 호
  2014년 1월-2월 호
통권 115호
  2014년 3월-4월 호 (통권115호)
 
주제가 있는 글
  /facebook과 영혼의 얼굴박영돈
  /삶이 길어질수록 왜 끝은 슬퍼지는가: 그럼에도 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이들을 기리며박동욱
  /교회, 공적 복음 들고 하나님 편에 서라김길호
  /우리 모두 조금씩은 아프다최유진
  /예언자적 복음주의자 짐 월리스이원석
  /다시 회심부터정모세
  /시편으로 돌아가라톰 라...
  /시간을 디자인하다_신은숙 인터뷰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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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날은 가고 신간은 오고IVP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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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제가 있는 글/facebook과 영혼의 얼굴박영돈  
     

 

페이스북은 참된 교제와 소통에 대한 인간의 깊은 갈망이 표출되는 채널이기도 하다. 인격의 성숙은 교제를 통해 이루어지니 페북이 잘 만하면 성화의 장으로 기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인격적인 교류가 없는 SNS상에서 진정한 교제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말과 글에서도 그 사람의 어떠함이 드러나니 어느 정도의 인격적인 교류가 이루어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자주 만나면서도 그 사람의 정체를 종잡을 수 없는 친구가 있는 반면, 안면 없이 페북에서 글로만 접하고도 오랜 친구처럼 마음이 통하는 이들을 만나기도 한다.
어떤 이는 페북에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어리석다고 생각하며 글쓰기를 꺼린다. 그러나 부족함이 드러날지라도 자신을 진솔하게 오픈하는 것이 교제를 향한 첫걸음이다.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도록 피상적인 언어유희로 자신을 은폐하는 이와는 교제가 불가능하다. 우리 모두에게는 실제보다 더 괜찮게 보이고 싶은 본능적인 욕구가 있기에 어느 정도의 포장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얼마큼 세련되게 자신을 포장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여기서 완전히 자유로울 사람은 없다. 전혀 위장하지 않고 진솔한 것처럼 고단수로 자신을 포장하는 데 명수인 사람도 있다. 그런 꼼수에 능한 이들이 나 같은 사람이다. 그래서 진솔하다는 칭찬을 교묘히 유도해 낸다. 이런 포장술의 단수가 낮은 사람일수록 자신의 너절함이 여과 없이 드러나 우세스럽게 된다.

포장에 능하든 서투르든 영혼의 얼굴이 말이나 글에서 드러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페북에서 가장 많이 엿볼 수 있는 우리 내면의 얼굴은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은 허기진 인정 욕구다. 우리는 사랑과 인정을 먹고 사는 존재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은 자신을 알아주는 친구에 대한 갈망인지도 모른다. 우리 안에는 남이 잘난 척하는 것을 못 봐주는 비비 꼬인 마음도 있어 남의 자랑질이 유난히 눈꼴사나워 보인다. 그러나 내 안에도 똑같은 목마름이 있다는 것을 정직하게 인정할 때 잘난 척하는 이들을 좀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품고 고운 시선으로 봐줄 수 있지않을까.
어떤 글에서는 심각하게 병든 영혼, 왜곡된 인격, 삐틀어진 심성을 접하고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그런 이들과 친구 관계를 끊어 버리고 싶지만 조금이라도 유익을 줄 수 있는 관계로 성숙하기를 기대하며 인내해 본다. 짜증나게 하는 댓글, 꼬투리 잡는식의 반박 등에서 접하는 온갖 종류의 삐뚤어진 인격들을 품어 주는 너그러움을 배운다. 자신을 철저히 은폐하는 이보다는 차라리 어설픈 감정, 고집스러운 주관, 까칠한 성격이 솔직하게 노출되는 데서 오히려 인간미가 느껴진다. 우리 모두 미완성품 이니 서로의 깨지고 망가진 모습을 받아 주는 것이 성숙으로 나가는 길일 것이다.
전에는 페북이 아무 유익 없이 속만 뒤집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서로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페북의 매너도 조금은 성숙해 가는 것 같다. 생각이 안 맞고 주장이 대립되어 홱 토라졌다가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 화합하여 비 온 후 땅이 더 굳어지듯이 더 친해진다. 자기를 과시하고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은밀한 욕망에서 서서히 벗어나, 페친들을 자신의 팬이 아니라 섬기는 대상으로 대하는 자세를 조금씩 배워 간다. 신비롭게도 페북에서도 성화가 조금씩 진행되는 것 같다._2월 17일

시들어 감의 미학
꽃 가게를 하는 이가“꽃은 시드니까 아름답다”고 한 말의 여운이 길게 남았다. 꽃이 만개하고는 곧 시드는 것처럼 우리 인생도 잠시 피는 듯하다 금세 시들어 버린다. 우리는 반짝하고 피어오르는 한순간을 위해 온 생을 불태우고는 허망하게 사그라져 버린다. 만개하는 순간의 짧은 환희를 위해 일평생 야심찬 인생 프로젝트를 성취하려고 무진 애를 쓰고 수고하지만, 대부분은 제대로 피지도 못하고 파묻혀 있다가 시들어 버리는 인생의 씁쓸함을 맛본다. 어떤 페친이 우리는 뭔가 대단한 일이라도 할 것처럼 온갖 개폼을 잡다가 사라지는 존재라고 했는데, 60년간의 내 삶을 돌아보니 내가 영락없이 그 꼴이라는 생각이 든다. 화사하게 피었던 꽃이 시드는 것은 아름다움의 여운이라도 남긴다고 할 수 있겠지만 피지도 못하고 시드는 것은 그런 의미마저 부여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땅에서 피지 못한 인생들이여, 너무 상심하지 마시라. 어차피 주님의 말씀대로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이 시드는 것이니. 이 땅에서 덧없는 아름다움과 영광의 꽃을 피우려고 안달하다가 영원한 세계에서 영구히 시들어 버릴 수 있다. 비록 여기서 영광과 명성을 꽃피워 내지 못해도 그 세계에서 영원히 찬란한 아름다움으로 꽃피게 될 것이니 이 땅에서는 빛도 이름도 없이 시들해 보이는 인생도 무한한 의미와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피지도 못하고 시들어만 가는 우리 인생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영원한 만개를 기대하며 잘 시들어 가자.
_2월 28일

부실한 성화의 복음
성화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데 가장 큰 거침돌이 되는 것이 우리 경험의 관점을 투사하여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다. 성화에 대한 성경의 분명한 말씀이 우리의 실제 삶과 거리가 멀 때 우리는 그 말씀을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 말씀의 빛 가운데 경험을 진단하기보다 오히려 경험이라는 스크린을 통해 말씀을 걸러 내고 그 틀에 꿰맞추어 성경을 해석하려는 고질적인 병폐가 있다. 우리의 빈곤한 삶과 실패의 경험이 성경의 분명한 진리를 읽지 못하게 방해하는 눈가리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성경의 절대 권위와 영감을 굳게 신봉하는 보수주의자들이 성화론에 있어서는 자기도 모르게 경험과 이성으로 복음의 진리를 이해하고 재단하는 자유주의자들이 되기 쉽다. 이만큼 성화의 부재가 고착화되면 성화에 대한 믿음 자체를 잃어버릴 뿐 아니라 변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과 삶을 교묘히 합리화하는 기발한 방식으로 복음을 왜곡한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또 다른 형태의 값싼 은혜의 복음, 즉 구원받았으나 성화되지 않는 이들을 위한 값싼 위로의 복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메시지는 성화의 진전이 없어 고뇌하는 이들의 자괴감을 어느 정도 완화해 주고 일시적인 위로를 안겨 준다. 성화의 지난한 여정에 지친 이들의 갈한 혓바닥에 몇 방울의 생수를 떨어트려 준다. 그리고는 그들을 다시 영적 불모의 황량한 광야로 내몰아 거기서 끝없이 맴돌게 한다. 그런 가르침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약속의 땅, 그리스도 안에서 성화의 열매를 풍성히 맺는 삶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_3월 18일

박영돈 고려신학대학원에서 교의학 교수로 섬기고 있으며, 한국 교회 성령 운동의 문제점을 분석한「일그러진 성령의 얼굴」과 한국 교회의 근원적 문제에 대한 성경적 대안을 제시한「일그러진 한국 교회의 얼굴」(이상 IVP)의 저자이다.

  1. facebook과 영혼의 얼굴
2. 삶이 길어질수록 왜 끝은 슬퍼지는가: 그럼에도 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이들을 기리며
3. 교회, 공적 복음 들고 하나님 편에 서라
4. 우리 모두 조금씩은 아프다
5. 예언자적 복음주의자 짐 월리스
6. 다시 회심부터
7. 시편으로 돌아가라
8. 시간을 디자인하다_신은숙 인터뷰
 
   
   
  1. 봄날은 가고 신간은 오고
 
   
   
  1.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