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아서 아름다운… 우리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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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아서 아름다운… 우리들의 삶
책_ 『작아서 아름다운』 (애슐리 헤일스)
글_ 유해동 (더불어함께교회 대표목사)
삶을 돌아보게 해 준 뜻밖의 질문
어느 목회자 모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평범한 나눔 질문이 함께 모인 이들을 모두 당혹스럽게 만들었습니다. “한 주간 지내면서 즐거웠던 일이 있었다면 나눠 주세요.” 이 질문에 누구도 쉽게 답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이 질문이 그토록 어려운 질문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어려운 신학 지식을 물은 것도 아니고 그저 즐거웠던 일 한 가지를 나눠 달라고 했을 뿐인데 왜 우리는 쉽게 답하지 못했을까요?
이 질문을 두고 우리는 삶을 들춰 봐야만 했습니다. 정말 즐거운 일이 한 가지도 없었을까요?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곰곰 생각해 보니 소소한 즐거움을 준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날씨가 화창했던 것, 뒷마당 귤나무에 작은 열매가 열린 것, 아이들이 아파서 학교에 가지 않았지만 함께 식사하면서 웃고 떠들었던 것…. 그런데 왜 우리는 이것을 한참 애써서 떠올려야 했을까요? 그 자리에 있던 분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우리에게 각인되는 일들은 크고 손에 잡히는 일 아니었을까요? 목회자로서 사역하면서 중요하다고 여겨지거나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성취될 때에만, ‘즐거움’이라는 이름을 붙였던 것은 아닐까요?”
반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니, 할 수 없었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별다른 취미 하나 없이 살아왔기에 깊이 공감되었기 때문입니다.
책이 시작되는 자리
저는 지금도 질문하고 있습니다. ‘성취 중심의 삶을 지나치게 강요받고 사느라 소소한 삶의 즐거움을 놓치고 사는 것은 아닌가? 책의 표현대로 개인의 끝없는 선택과 야망과 조급증이 혼합된 삶(24쪽)을 사느라 작고 소소한 일상들은 그저 성취를 위해 소비되는 하찮은 것들로 만들어 버리지는 않는가?’ 쉬는 날을 맞으면 제일 먼저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늘 다른 삶이 가능하다고 자신 있게 답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이 없기도 합니다. “씩씩한 답”을 내놓을 수는 있지만 정말 그러한 “삶”을 살기에는 제 안의 목소리가 너무 작기 때문입니다.
이 책이 시작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내 한계를 예의 주시하라고, 거기에도 여유로운 삶이 있다고…”(19쪽). 성취를 위해 살아오느라 소진시킨 작고 소소한 우리의 일상 안에 하나님의 선물이 있다고, 그래서 이 책을 통해 우리 안에서 시작된 작은 목소리를 응원할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요. 이를테면, “관계의 한계, 목적과 사명의 한계, 권한의 한계. 이 모두는 그들을 서로 및 창조주와의 공동체 속으로 부르는 초대”(35쪽)라고 말하며 한계를 모르는 삶이 아니라 한계 안에 사는 삶에서 형통을 누릴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또 부자 청년의 이야기를 건네며 부와 성공과 명예를 넘치도록 갖고도 시들어 버릴 수 있기에 ‘조금만 더’의 환상을 내려놓고 하나님 나라 경계선 안에서 살아가도록 예수님이 초대한다고 이야기합니다(56쪽).
이 책은 천천히 곱씹어 볼 표현들을 통해 우리를 부드럽게 권합니다. 마치 봄날 햇살에 온몸을 맡기듯 이런 삶을 맛본다면 더욱 분명히 깨달을 수 있다고 초대하는 듯합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우리가 여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 딛고 일어설 성경의 이야기를 다시 들려줍니다.
성경으로 돌아가게 하는 책
저는 성경으로 돌아가게 하는 책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난해하고 지루한 책이 아니라, 오늘 여기서 집어삼킬 수 있는 양식으로 만들어 주는 책 말입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바로 그 일을 합니다. 성경의 이야기를 복기시켜 줍니다. 크게만 읽었던 성경의 서사를 작고 소박하게 읽도록 이끌어 줍니다.
저자는 예수의 성육신 사건을 떠올려 보라고 말합니다. 수태고지로 시작된 신비롭고 놀라운 성육신 이야기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평범한 길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태내에서 세포 분열을 거쳐 더디게 성장하는 과정”을 보낸 메시아, “어머니의 산도를 뚫고 나와 태아 기름막이 씻겨 나가고, 탯줄이 잘리고, 이 땅의 공기를 힘차게 들이마신” 메시아를 이야기하며,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엄청나게 큰데도, 한 아기의 출생으로 작게 시작”되었고, “예수님은 기꺼이 작아지셨고 한계를 사랑에 이르는 길로 받아들이셨다”고 소개합니다(37-38쪽).
저자의 이 안목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으로 성경을 읽으면 한계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이야기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특히, 예수의 이야기가 온통 그러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는 탄생부터 죽음과 부활의 모든 과정을 감내하셨습니다. 파도를 잠잠하게 만드신 주님이시지만 유다의 배신에 자신을 맡기셨습니다. 불의한 재판과 조롱 속에서 죽임을 당하시고도 부활의 시간마저 고요하고 평범하게 보내셨습니다. 저자의 말처럼 예수는 어떻게 하면 “실제 몸, 장소, 가정, 나이, 시기, 재정의 한계”라는 실제 삶을 받아들여 좁은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 하나님의 선한 통치와 지도 아래 사는 것이 가능한지 발견하게 하셨습니다(59쪽).
아브라함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조상이라 불릴 만큼 칭송받는 아브라함의 생애에 특별함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아브라함의 생애도 가만히 들여다보니 우리와 다름없다는 것입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마주한 100년의 삶은 온통 이주, 자식을 낳아 기르는 문제, 부동산을 구하는 현실에서의 씨름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큰 비전을 지녔지만 현실이라는 조건 안에서 갈등하고 흔들리며 살았던,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독자들은 책의 도움으로 바로 이 유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한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별것 아닌 듯해도 얼마나 신비로운지, 책에 나오는 이들의 삶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우리 삶에도 신이 머무르시며 활동하실 수 있고, 그렇기에 믿음으로 살아가는 일도 어렵지 않다고 알려 줍니다.
꼭 읽었으면 하는 독자
책을 읽는 내내 저와 같은 자리에 서 계신 목회자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목회자들이 꼭 이 책을 읽었으면 합니다. 저자의 표현대로 교회가 우리의 가장 우선적 정체성이기 때문입니다. 저부터도, 목회자로 살아오면서 성과가 곧 나를 증명해 줄 것처럼 불안과 두려움에 이끌려 살았기에 교회가 우리의 일이 아니라 정체성이라는 말이 쉽지 않음을 알고 있습니다. 목회자들에게 여유로운 삶이란 어떤 삶일까요? 이 책의 생각을 따라 표현하자면, 우리의 살과 피를 쏟아 놓은 결과물로서의 교회가 아니라, 우리의 살과 피가 된 교회 본연의 삶을 되찾는 일에 우선적으로 헌신되어 누리는 삶 같습니다.
교회의 몸을 이루고 있는 성도들도 이 책을 꼭 읽으시기를 권합니다. 같은 유익을 누리실 것입니다. 물론 우리 일상은 여전히 바쁘고 분주합니다. ‘왜’라는 이유를 묻지 않고도 하루하루 살아온 지 오래이지요. 스마트폰은 우리의 잠자리에까지 와 있어도 책은 한 페이지도 우리 삶에 자리할 시간이 없지만, 이 책은 읽어 볼 만합니다. 무엇보다 각 장의 구성이 쉽습니다. 지하철에서, 조용한 곳에서 잠시 짬을 내 읽을 수 있습니다.
저자의 이야기를 천천히 곱씹어 읽다 보면, 우리가 누구이며 작아서 아름다운 삶이 어떻게 가능한지 알게 될 것입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영혼의 양식이 되어 줄 것입니다. 또한 조금씩 변화되는 감정과 새로워지는 상상력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