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경을 이야기해야 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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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_ 『월경, 어떻게 생각해?』 (레이철 존스 | 오현미 옮김)
글_ 오현미 (전문번역가)
월경이라는 고통스러운 굴레
나의 초경 체험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그 시절 엄마들이 대부분 그랬을 수 있지만, 엄마가 그런 일이 있을 거라고 미리 알려 주지 않았기에 나는 초경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물론 알려 주는 사람이 없었어도 여자가 일정한 나이가 되면 ‘그런 것’을 한다는 걸 어떤 경로로든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막상 그게 내 일로 닥치자 공연히 죄인처럼 움츠러들고 민망하고 불안했다. 누구도 긍정적으로 이야기해 준 적 없는 일이 내게 시작되었다는, 무의식적으로 학습된 두려움과 불편함이었다.
그 뒤로는? 다른 식구들 다 자는 밤에 “욕실 세면대 앞에서 잠옷 바지의 엉덩이 부분을 비벼 빨”아야 했고(p. 170), 식당에서 “의자를 탁자 아래로 밀어 넣고 최대한 빨리” 도망쳐 나와야 했고(p. 81), 공중 화장실에서 월경용품 포장을 “뜯는 바스락 소리가 행여 밖으로 새어 나갈세라 건너편에서 변기 물 내리는 소리가 들리기를 기다려야” 했던(p. 84) 죄인 아닌 죄인으로 수십여 년, 월경은 초경 때의 그 민망함과 불안과 위축됨의 연장이었을 뿐이고, 불편하고 고통스럽고 아쉽고 이불 걷어차고 싶은 기억이 대부분이었다.
그렇다고 월경이 끝나는 것이 반드시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 시나브로 진행되다가 어느 시점에서 불현듯 자각하게 되는 폐경은 수십 년을 시달리던 그 불편함과 통증에서 이제는 벗어났다는 자유로움 못지않게, 나를 구성하는 여러 정체성 중 하나를 잃었다는 상실감에도 한참을 시달리게 했다. 폐경기 증상과 더불어 시작되는 본격적인 노화는 깊은 우울감까지 안겨 주었다. 폐경이 아니라 완경이라는 긍정적 수사도 그 상실감과 우울감을 상쇄해 주기에는 너무도 힘이 약했다.
그런데 세상의 절반을 구성하는 이들의 경험에 어디 그런 일반적 측면만 있을까. 당연히 있어야 할 월경이 어떤 이유로든 없는 것은 심각한 병증이다. 아이를 기다리며 이번 달에는, 이번 달에는 하면서 초조한 기다림을 되풀이하는 여성에게 꼬박꼬박 찾아오는 월경은 또 얼마나 야속한가. 생리대 살 돈이 없어 운동화 깔창과 휴지로 생리대를 대신한다는 어린 빈곤층 여성에게 월경은 더할 수 없이 참담한 현실이다. 월경을 부끄러운 일로 여겨 매달 며칠씩 학교에 결석한다는, 이 시대 일로 여겨지지 않는 문화적 금기에 갇혀 버린 또 다른 어린 여성은 어떤가. “뼈들이 서로 어긋나면서 마치 쇠사슬이 복부를 끌어당겨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것 같은”(p. 54) 월경통에 시달리는 여성도 드물지 않다. 심지어 탐폰에서 자라는 박테리아에 감염되어 쇼크 증후군을 앓다 마침내 두 다리를 절단해야 했던 여성도 있다.
월경과 성경이라니?
『월경, 어떻게 생각해?』는 그런 ‘월경’에 대해 말하는 책, 더구나 월경의 ‘신학’을 말하는 책이다. 거개가 암울하기만 한 월경의 경험이 신학적 렌즈를 통과하면 긍정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일까? 질문을 바꿔, 저자는 왜 월경에 관한 기독교 책을 썼을까? 우리네 삶에서 성경이 다루지 않는 부분은 없으며, 월경도 그런 평범한 삶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답한다. 그리고 기독교는 우리 문화 속에서 월경 관련 금기가 수 세기 동안 지속되게 만든 책임이 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실제로 성경은 여성의 월경에 대해, ‘피 흘림’에 대해 말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창세기에서 라헬은 남편 야곱과 함께 아버지 라반에게서 탈출할 때, 이방 신상을 훔친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월경 중이라는 핑계를 댄다. 레위기의 정결 규례는 월경 중인 여성을 불결하다고 언급한다. 신약에는 혈루증, 곧 장기간 지속되는 비정상적 하혈을 앓는 여자가 예수님께 치유받는 이야기가 나온다.
책을 번역하면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구약 시대에 월경이 왜 그렇게 부정적인 관점에서 인식되었는지를 통찰하는 부분이었다.
“하나님의 약속이 주로 자녀 출산을 통해 실현되어야 하므로, 월경을 하는 달, 즉 임신이 되지 않은 달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진전되지 않은 달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악을 최종적으로 물리치시는 일은 한 여자의 ‘후손’, 즉 이 여자의 태에서 나올 아이가 이룰 일이었기에(창 3:15), 월경을 한다는 것은 메시아의 도래를 한 달 더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었다.” (p. 151)
아이를 낳지 못하거나 낳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기에 약속 성취에 참여할 수 없게 된 성경 속 여성들의 비탄에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저자가 여성이기에 이를 수 있는 유리한 지점이었을 것이다.
월경의 피에서 구속의 피까지
저자는 월경에 관한 책 읽기는 복음의 효력이 미치는 다른 모든 영역, 즉 삶의 전 영역에 관해 생각해 보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망가진 세상에 살고 있는 증거로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나 암이나 교통사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자궁 내막증과 월경통과 폐경기 경험을 이야기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말이다. 따라서 월경의 메커니즘을 말하면서 책을 시작한 후, 사춘기부터 완경기에 이르기까지 여자들에게 아주 규칙적인 현실인 ‘피’ 이야기를 통해 저자가 우리를 데려가는 곳은 놀랍게도 구속(救贖)이라는 또 다른 현실이다. 아니, 어쩌면 충분히 예상가능한 귀결일 수도 있다. ‘피’를 빼놓고 복음을 말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피는 현실이다. 그래서 피는 앞으로 맞게 될 어떤 현실적인 날을 실질적으로 일깨워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우리를 비롯해 하나님의 모든 백성이 피에 씻긴 흠 없는 흰옷을 입고 하나님의 보좌를 중심으로 모이게 될 날.…고통과 두려움이 사라지게 될 날. 그리스도의 보혈이 최종 권위를 갖게 될 날.” (p. 176)
그러므로 월경이라는 다소 민망한 주제를 다루는 책이라 선뜻 관심을 표하거나 집어 들지 못하는 (남성)분들에게, 그리고 여성이니 몸이니 하는 표제어 때문에 혹 특정 ‘-ism’을 말하는 책 아닌가 하실 분들에게, 저자의 입을 빌려 말하고 싶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어떤 존재로 만드셨으며 여러분을 어떻게 구원하셨는지를, 그리고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긍정적인 진리를 그분께서 인생의 모든 경험을 향해, 심지어 피 흘리는 경험을 향해서까지 말씀하신다는 사실”(pp. 25-26)을 책을 통해 확인해 보라고 말이다. 이것이 우리가 월경을 이야기해야 할 이유다.
오현미
『월경, 어떻게 생각해?』(IVP) 외 다수의 책을 옮긴 전문 번역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