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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회복이 하나님께만 있음을 직감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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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 양지영_(IVP 편집부 간사)



 
한창 진로 고민을 하던 20대 중반 어느 날, 나는 퇴사를 앞두고 밤새 웅크린 채 기도했다. 깜빡 잠이 들었는데 꿈에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님을 뵈었다. 수많은 군중 사이로 그분과 눈이 마주쳤는데, 주님은 나에게 “지영아, 내가 다 이루었다. 이제 너는 가라” 하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눈빛과 음성에서 큰 힘을 얻었고, 이후에도 용기 있게 나다운 길을 택하고 나아갈 수 있었다. 
 
베드로와 예수님의 눈빛이 마주치는 장면에 관한 『따름, 그 회복의 여정』의 문장을 읽다가 그때의 주님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저주하듯 그분을 부인한 베드로를 바라보는 예수님의 눈빛을 저자는 이렇게 묘사한다. “여전히 친밀하고 가까운 눈빛이며 베드로를 사랑하는 눈빛입니다.…파산한 영혼 너머에 돌이킬 그의 미래, 그리고 실패를 딛고 돌이켜 일어날 수 있는 회복까지 보십니다”(p. 153). 잠시 책장을 덮고 예수님의 얼굴을 그려 보다가 이내 생각에 잠긴다. 그러고 보면 항상 그랬다. 나의 신음 같은 간구에 그분은 기적처럼 상황을 변화시키기도 하셨지만 대개는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아는 것, 그 자체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따름, 그 회복의 여정』은 우리로 복음서 이야기 속으로 함께 들어가 예수님을 마주하게 한다. 그분은 우리에게 구원을 베풀기 위해 십자가를 향해 묵묵히 걸어가신다. 예루살렘 입성 전 마지막으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등 굽은 여자를 치유하시는 것을 시작으로 예수님은 바디매오, 삭개오, 베다니의 마리아, 베드로 같은 성경 인물들을 만나 그들의 삶을 회복시키신다. 이 책에서 예수님은 때로는 치유하시고, 때로는 함께 음식을 드시고, 때로는 죽음의 고통으로 얼굴을 일그러트리시고, 때로는 그저 나를 알고 계신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신다. 나는 완전한 인간이신 그분이 육신을 짓이겨 가면서 우리를 사랑하신 이야기를 읽고, 거기에 잠잠히 머물다가 신기하게도 마음에 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걸 느낀다. 죽음이 사흘 만에 부활로 화한 것과 같은 신비한 경험이 이 책을 읽는 내내 이어진다.

사실 여러 번 읽어 익숙하다고 여긴 복음서의 장면들이지만, 저자의 깊고 섬세한 스토리텔링에서 내가 놓친 수많은 묵상의 조각을 발견한다. 저자는 산, 강, 나무, 마을에 세세하게 눈길을 주고, 그 모든 것이 구약의 이야기 혹은 신약의 나머지 성경과는 어떤 연관을 맺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한 예로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기 위해 예수님이 기드론 시내를 건너시는 장면에 관한 묘사를 들 수 있다. 여기서 저자는 다윗왕 또한 자신에게 칼을 겨눈 맏아들 압살롬의 반역을 피해 기드론 시내를 건넜었다는 사실을 소개한다. 제자들의 배신을 예감하면서 다윗왕이 겪은 배역을 기억한다. 배반의 사건들이 나란히 놓이면서 우리는 쓰라린 예수님의 심정을 절감한다. 그러다가도 저자는 다윗왕이 이스라엘에 선사하지 못한 참된 구원이 주님께는 있음을 독자에게 상기해 준다(p. 126). 그렇게 낙망한 마음 위로 소망이 무게감 있게 내려앉는다.

헬라어, 히브리어에 대한 꼼꼼한 주해를 통해 본문의 의미를 밝히는 지점들 또한 읽는 이의 시선을 붙잡는다. “이제부터 삭개오는 더 이상 ‘작은’ 사람으로 남지 않아도 됩니다. 드디어 그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으로,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게 될 것입니다”(p. 70). 삭개오의 작은 키를 가리키는 헬라어 ‘헬리키아’(ἡλικία)가 에베소서 4:13의 ‘장성한 분량’에서도 쓰인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나오는 문장이다. 단편적으로 읽힌 한 단어가 깊이를 얻으며 확장된다. 이렇듯 밑줄을 긋고 페이지의 모서리를 접어 둘 문장들이 쏟아진다. 이런 아름다운 주해의 조각들은 한데 모여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관한 선한 그림을 이루고 만다.

이 책을 편집한 나는, 편집하는 동안 자주 눈물이 고이곤 했다. 외견상 회복이 필요한 시점은 아니었다. 무슨 안 좋은 일들이 닥쳐서 버거워하던 상황에 있지 않았다. 그러나 솔직해지자면, 나는 매일 회복이 필요했다. 순탄히 굴러가지 못한 과거가 종종 나를 흔들어 놓았고, 매일 해내야 하는 업무들은 내 능력을 넘어선다고 느껴졌다. 오해와 서운함이 쌓여 관계는 정체되었고, 경제적 기반이 없는 미래를 생각하면 막막했다. 시시각각 두려움은 내 영혼 여기저기에 생채기를 내며 엄습했다. 나는 날마다 그런 나를 보았고, 밤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했다. 숨 가쁜 하루하루를 보내며 하나님의 얼굴이 희미해지던 그때, 나는 이 책을 편집하면서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그분의 사랑을 깨달은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자신의 무너진 모습을 직시하고 있을 테고, 누군가는 나처럼 겉보기에는 일상을 잘 살아 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삶을 산다는 것은 매일의 생채기를 감내하는 일 아닐까.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회복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누구든 자신의 회복이 하나님 안에만 있음을 직감하고 있다면, 이 책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아들을 만나 보기를 진심으로 권한다.
IVP 2024-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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