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다는 것'에 대한 물음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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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모르는 시대에 철학과 신학, 문학과 과학을 종횡무진 넘나들며 기독교적 혜안으로 성경적 진리와 삶을 설파하는 강영안 교수는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기독 지성입니다. 그의 신간 <읽는다는 것> 출간에 즈음하여 미국 칼빈 신학교 철학신학 교수로 재직 중인 그와 서면으로 진행한 인터뷰를 두 회에 걸쳐 소개합니다.
A. 두 달째 거의 연금 상태로 지냅니다. 그 덕분에(?) 150쪽 남짓의 조그마한 책이 될 뻔했던 책이 270쪽으로 늘어났습니다. 이 가운데도 강의는 온라인으로 계속 했지요. 칼빈 신학교에서 이번 학기 제가 맡았던 과목은 목회학 석사 과정(M.Div) 학생들에게 필수 과목인 <변증학>이었습니다. 지난 주 강의를 끝냈습니다. ZOOM을 통하여 온라인 강의를 매주 2시간씩 했습니다. 강의실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하는 강의보다 훨씬 힘들더군요.
저의 강의는 그냥 혼자 말하는 방식이 아니라 묻고 답하고 다시 묻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학생들 이름이 화면 하단에 뜨기 때문에 곧장 이름을 부르면서 강의를 진행하는 이점은 있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고 서로 멀뚱히 쳐다보는 짧은 순간이 견디기가 쉽지 않음을 경험했습니다. 그만큼 침묵에 우리가 익숙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Q. 교수님의 첫 번째 기독교 단행본인 <강교수의 철학 이야기>(2001)를 IVP에서 내신 이후, <신을 모르는 시대의 하나님>(2007)과 <강영안 교수의 십계명 강의>(2009)를 출간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새로운 책 <읽는다는 것>을 출간하셨는데, 소감이 어떠신지요?
A. 빚을 조금이라도 갚은 느낌입니다. IVP에 진 빚 말이지요. 말로 진 빚이고 원고를 넘기겠다는 약속의 빚인데요, 사실 이게 돈으로 진 빚보다 더 무섭지요. 돈으로 진 빚은 없으면 갚지 못하는데 글을 주겠다는 말로 진 빚은 내가 쓰면 갚을 수 있으니까 훨씬 더 부담을 느끼지요.
학자의 일은 글로 종결된다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쓰는 일은 언제나 어렵습니다. 읽기는 쉽고 말하기도 쉽지만 쓰기는 무척 힘들어요. 계획에 없던 책을 이번에 냈습니다. ‘읽는다’는 행위에 제가 관심이 있는지를 어떻게 아셨는지 우리들교회에서 강연을 요청했습니다. 한 달 정도 고민하다가 수락했는데요, 결국 이것이 책을 한 권 만들도록 이끌어 주었습니다. 감사한 일이지요. 몸은 무척 피곤했지만요.
읽는 행위를 중심으로 인문학 공부의 중요성과 방법에 관해서 책을 하나 쓰고 싶은 생각은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공부한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지요. 이번에 그 가운데 일부분을 다룬 셈입니다. 지난 12월 교회에서 이 주제를 다루다 보니,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책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잘되었지요. 같은 믿음을 가진 형제자매를 섬기는 일만큼 소중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책의 내용이 쉽지 않은 부분도 있기에 혹시 괴롭혀 드리지는 않았나 하는 염려가 여전히 조금 남아 있습니다.
Q. <읽는다는 것>이라는 제목이 굉장히 호기심을 불러일으킵니다. 교수님께는 읽는다는 것(읽는 행위)이 어떤 의미일까요?
A. 우리가 태어날 때 가장 먼저 타인으로부터 접하는 게 무엇일까요? 의사와 간호사의 목소리, 엄마와 아빠의 목소리입니다. 듣는 것이 태어나 제일 먼저 남으로부터 경험하는 일입니다. 듣는 법을 익히면서 말하는 법을 배웁니다. 물론 이때 벌써 생각이 개입하지요. 생각 없이 듣거나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 다음은 읽는 법을 배우고 쓰는 법을 배웁니다. 이렇게 듣고, 말하고, 읽고, 쓰고, 이 가운데서 생각하는 행위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입니다.
먹고, 마시고, 잠자고, 움직이고, 사람들과 관계하는 신체적인 행위 못지 않게 이 다섯 가지 인문적인 행위를 통해서 사람은 사람이 됩니다. 문자를 익히고 읽는 법을 배우기 이전에도 이미 표정을 읽고 처한 상황을 읽을 때 벌써 읽는 법을 읽히지만, 대부분의 읽기는 문자를 읽는 법과 함께 정교해지고 세련되어집니다. 읽기를 통해서 말하고 듣는 법도 더욱 더 발전하고 기억과 상상력이 향상되고 삶의 이야기가 빚어집니다.
생각과 읽기, 읽기와 쓰기는 상호 작용을 합니다. 어느 행위가 먼저라고 할 수 없지요. 읽은 것을 가지고 생각하고, 쓰면서 생각하고, 다시 읽으면서 생각하고 쓰게 됩니다. 타인에게 하는 말은 이 과정의 산물이 대부분입니다. 책에서도 이야기했습니다만 학자에게는 읽기가 마치 음식을 섭취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먹지 않고서는 살 수 없듯이 읽지 않고서는 학자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신자도 마찬가지겠지요. 기도와 함께 말씀을 읽지 않고서는 어떻게 삼위 한 분 하나님과 사귐을 지속할 수 있겠습니까.
Q. 책에서 읽기의 ‘현상학’, ‘해석학’, ‘윤리학’을 시도하셨는데요,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읽기라는 행위에 뭔가 어려워 보이는 철학이 연결되어 있어서 좀 놀랐습니다. 일상적이고 익숙한 행위인 ‘읽기’에도 이런 학문적 접근이 가능한가요?
A. 읽기에 관해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굳이 저의 접근이 학문적이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누구의 이론을 가져와서 읽기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책에서 읽기를 다룬 방식은 제가 <일상의 철학>에서 먹고 마신다는 것, 잠잔다는 것, 일한다는 것, 쉰다는 것을 다룬 방식과 동일합니다.
먼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이 눈앞에 드러나는지 현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일이 앞섭니다. 이것을 이름 붙여 ‘현상학’이라 했지요. 그 다음에는 이것들의 의미를 묻습니다. 읽는 행위를 통해서 나와 세계, 나와 타인, 나와 대상이 어떤 방식으로 서로 이어지는지를 묻습니다. 이것을 ‘해석학’이라 이름 붙였지요. 세 번째 단계에 가면,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을 묻게 됩니다. 이것을 ‘윤리학’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일상의 여러 주제를 어떻게 다루었는지 궁금한 분들은 저의 <일상의 철학>을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읽는다는 것>에 가끔 어려운 용어와 개념이 등장할 수는 있습니다만 막상 천천히 읽어 나가다 보면 여러분들이 평소 읽는 방식이 어떤지 거울에 비추어 보는 경험을 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 두 번째 인터뷰로 이어집니다.